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섭(李秉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705
  • 전몰일자 : 19510519

공훈사항

이병섭 일병은 경기도 광주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인해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경 제3여단 제6연대에 입대했다. 제6연대는 1948년 11·12월 발생한 연대 내 좌익 세력의 반란사건으로 1949년 4월 15일 해체되고, 제22연대로 개칭되었다.
이병섭 일병이 전선에 투입될 무렵 연대는 1951년 1월 14일부터 22일까지 영월 동남쪽 남대리 부근의 주실령, 옥석산, 어래산 일대에서 침투한 적 제31사단을 포위 격멸했다. 이어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1951년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집중공격으로 진지가 돌파당했다. 연대는 적의 끈질긴 추격을 지연시키며 2월 18일 제천 북방의 성남리 부근에 진지를 편성했다.
4월 22일 시작된 중공군 제5차 공세(4월 공세) 때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인제의 한석산, 매봉 일대에서 북한군 제6사단과 치열한 격전 끝에 결국 주방어선인 한석산을 지켜냈다. 5월 16일 중공군 제5차 공세(5월 공세)가 시작되면서 방태산으로 후퇴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는 순간까지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섭 일병은 1951년 5월 19일 하진부리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섭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93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6-ㄱ-01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소속이 제6연대로 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동 연대는 전쟁 발발 이전에 해체되어 제22연대로 개칭되었으므로 오기로 추정하여 제22연대로 조정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