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섭(李炳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12142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이병섭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힘겹게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지 및 출생 일자 미상).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병섭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병섭 일병은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북한군의 8월 공세 일환으로 북한군 제12사단이 안동 북쪽에서 공격해오자, 그들은 안동 북쪽에서 국군 제8사단을 엄호하면서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그때 진지 후방으로 침투한 북한군과 치열하게 싸웠으나 역부족으로 의성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다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일병은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신병에 불과하였으나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전투에 임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섭 일병은 1950년 8월 27일 화봉리 부근 전투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섭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1083 육)을 추서하고 유해(44묘역-12판-1234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ㅂ-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