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섭(李炳燮)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806271
  • 전몰일자 : 19500810

공훈사항

이병섭 이병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6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후방지역에서도 북한의 무장공비와 남한 내 공산주의자 등에 의해 발생한 소요 사태로 인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38도선에 배치된 장병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 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당시 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전차무기인 2.36인치 로켓포는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없었다. 개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38도선의 방어선이 대부분 무너지고 말았다.
이병섭 이병이 소속된 사단은 모든 부대를 서울 방어에 투입하라는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의정부 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북한군의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이 이병과 장병들은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하였다. 이어 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과 격돌하였다.
이병섭 이병과 장병들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사단은 평택-진천-청주-보은-안동으로 철수한 후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동강 남안으로 이동하여 3일 야간까지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일부터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포항을 점령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병섭 이병은 1950년 8월 10일 죽장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섭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0판-8면-02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ㅇ-07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