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선(李秉善)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8834659
  • 전몰일자 : 19530411

공훈사항

이병선 하사는 1930년 10월 20일 충청남도 보령군 주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2년 5월 23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하사는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하사가 연대에 배치될 무렵 전후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1952년 1월 12일부로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중공군 5월 공세 이후 중공군과 유엔군은 피·아간에 군사작전으로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휴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협상이 열렸고, 이후의 전투양상은 휴전협상에서의 설전과 더불어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진행되었다.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주방어선을 계속 유지하면서 적과 소규모 진지전과 정찰전을 전개했다.
그러던 중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대규모 공격을 가해왔다. 이 고지에 배치된 제22연대가 고지를 탈취당하자 제18연대가 역습을 실시했고, 10월 2일까지 백병전을 전개하며 치열한 교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연대는 특별한 격전 없이 전투정찰작전, 수색정찰, 교란작전, 진지보강작업을 병행했다.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서전으로, 1953년 4월 2일 사단의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4월 11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선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4면-874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9-ㅋ-01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