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선(李炳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0219
  • 전몰일자 : 19511009

공훈사항

이병선 일병은 1930년 11월 3일 경상북도 대구시 대명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선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무렵 전선은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공세로 전환한 후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전투를 수행하면서 1950년 10월 25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제천-삼척을 연하는 선까지 철수하였으나, 제2차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38선 부근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 일병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 이남으로 다시 철수하게 되었다.
1951년 1월 초 평택-삼척을 연하는 37도선까지 후퇴하였던 국군은 다시 반격을 시작해 2월 10일에는 한강 남쪽에 도달하였다. 이병선 일병과 장병들도 국군의 진격에 맞추어 수도권 일대에서 후방지역 방호작전을 재개하였다. 3월 15일에는 서울을 재수복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서울로 진주해 패잔병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무장공비들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후방이 차단되었던 북한군 주력의 일부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기에 잠입한 북한군 제10사단의 패잔병들과 연결해 산악지대에 은거하면서 후방교란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1951년 4월에 접어들어 이병선 일병과 장병들은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저지하기 위하여 모든 전력을 경주하였다. 이 무렵 양측은 주요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초진지 쟁탈전을 전개하였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5월 하순 반격작전을 계속하여 중공군을 섬멸하여 북한군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가하고 고지를 확보함으로써 1개월간에 걸쳐 최대 역량을 투입한 북한군의 춘계공세가 대패하였다. 그 후 10월에 들어 전선의 양상은 장기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고 대부분 전선에서는 연대급 이하의 전초진지 쟁탈이 반복된 소부대전투의 연속이었으며 거의 소강상태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임하였다. 이병선 일병은 중공군 방어 작전에 참여하여 임무를 수행하다 1951년 10월 9일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6면-05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86-ㅂ-1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