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석(李秉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404667
  • 전몰일자 : 19530725

공훈사항

이병석 하사는 충청남도 서산시 대호에서 1926년 4월 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3년 2월 13일에 입대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적군은 6·25전쟁의 휴전을 앞두고 철원평야를 빼앗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지를 공격해왔고 국군은 고지사수를 위해 치열한 방어전을 전개했다. 당시 북한군은 지형조건 상 아군의 고지를 감제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있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공격 징후를 1953년 초순부터 간파하고 있었고 전초진지 경계를 엄중히 하는 동시에 수색 정찰 활동을 증가시키고 예비대를 전방으로 이동시켰다.
북한군은 1953년 5월 13일 막강한 화력으로 제8사단의 주저항선 및 후방에 걸쳐 포격을 가했고 피아간에 수류탄전과 치열한 사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는 국군의 전초진지인 마제형 진지를 점령하여 확보함과 동시에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제8사단은 6월 12일 중공군의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수도고지를 피탈 당했다. 이후 7월 13일 중공군은 정전을 앞두고 최후의 공세를 실시했다. 이들은 5개 사단을 동원해 국군 6개 사단이 배치된 중부전선 금성지구 공격을 계획했다. 금성지구의 전방에는 제8사단과 제6사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의 전방으로 중공군 2개 군 이상이 위치했다. 당시 제21연대는 교암산 후방에서 예비대로 배치되어 있었다. 적군은 1953년 7월 13일에 공격을 시작했다.
제8사단은 금성지구의 좌·우측방으로 중공군이 우회하며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21연대 장병들은 제10연대, 제16연대의 철수를 엄호하며 금성천 남측 방면으로 철수했다. 제21연대 장병들은 철수와 동시에 주포리-백암산 일대에 방어선을 전개하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제8사단은 7월 16일을 기점으로 무명고지를 향해 돌격을 개시하였고 적 5개 소대 병력과 25분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섬멸했다. 이 과정에서 이 하사는 1953년 7월 25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금화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석 하사의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7792 육)을 추서하고 그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4판-7면-00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ㅍ-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