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석(李秉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522
  • 전몰일자 : 19501221

공훈사항

이병석 일병은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자, 그는 조국통일의 선봉이 되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1월 초순 제주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마친 후 제2훈련소에 조교요원으로 배치되었다.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8월 1일 이 교육대가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고,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육군본부 직할로서 대구에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같은 날 부산에서 제2훈련소가 제1·5교육대 병력과 제9교육대 일부 병력을 기간으로 창설되었다. 뒤이어 8월 22일 제3훈련소가 동래군 구포에서, 제5훈련소가 제주도 모슬포에서 각각 창설되었다.
이병석 일병이 육군 제2훈련소에 배치될 무렵인 11월 중순의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을 향해 총공세를 펼쳤으나,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청천강 선으로 철수하여 2차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후방지역에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좌익 빨치산 세력들과 합세하여 군 주요시설과 정부기관이 밀집되어 있는 대구와 부산 지역에 대한 습격, 파괴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즉,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전선 상황이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제2훈련소는 교관·조교를 비롯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게릴라들의 공격에 대응해 왔다. 이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기동타격대로서 이들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12월 20일 부대 인근에 적 게릴라들이 출몰하자 이 일병과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소탕작전에서 이병석 일병은 적과 맞닥뜨려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1950년 12월 21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4-ㄱ-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