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석(李秉錫)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8883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석 일병은 1931년 9월 30일에 황해도 해주군 강호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하던 1950년 11월 8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에 배치되었다.
이병석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차후 있을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진지구축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시작했다. 당시 제6사단은 선두부대가 10월 26일에 압록강 변의 초산을 점령했으나, 이때 동림산 일대에 숨어 있던 중공군이 아군의 후방을 차단한 후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 제6사단 장병들은 큰 피해를 받고 10월 27일부터 후방이 차단된 상황에서 철수해야 했다. 그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북진작전 간에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에 관한 정보를 사단에 제공하여 적을 섬멸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엔군 전체가 철수하게 되자, 수색소대도 포위망을 돌파하면서 험준한 산길을 따라 철수하여 10월 3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11월 24일을 기해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중공군은 11월 25일에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주로 국군의 후방을 차단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진격을 멈추고 평양방어선으로 철수했다가 결국은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병석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12월 중순에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적진으로 침투하여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예상한 대로 서울을 목표로 총공세를 펼쳤다. 제6사단은 전곡 일대 방어진지에서 적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이후 인접부대가 돌파되어 측후방이 위험하게 되자,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에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철수했다. 수색소대는 적진에 남아 적 후방을 교란하여 적의 진출을 지연시키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이날 그는 적의 습격을 받고 돌파를 시도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1판-5면-04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2-ㅎ-09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