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석(二丙錫)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1102

공훈사항

이병석 순경은 1927년 10월 3일 충북 진천군 만승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북도경 진천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진천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이 남으로 진군하자 진전경찰은 평택-진천, 장호원-진천, 음성-진천을 잇는 주요 도로 경비, 진천의 주요 시설·교량 경비,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3일 진전경찰은 진천 이월면에서 음성 방면의 도로를 경비하던 중 북한군 정찰부대로 추정되는 1개 소대규모의 적과 조우하여 적 부대와 교전이 벌어졌다. 약 1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진천경찰은 적 3명을 사살하였으며, 진천경찰도 2명이 전사했다.
전선이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고 국군과 경찰이 계속 후퇴하면서 진전경찰도 7월 초부터 축차적으로 남으로 이동했다. 진천경찰은 국군의 지연전과 병행하여 진천-청주-보은-상주-구미를 거쳐 7월 30일 칠곡에 도착했다.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전까지 진천경찰은 이곳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 총반격작전을 개시하자 각 도(道) 경찰국은 관할지역 경찰관서를 수복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9월 20일 칠곡을 출발한 진천경찰은 9월 28일 진천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잔적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들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 지침을 하달하고 전국적으로 공비토벌을 실시하도록 했다. 이 순경은 제1차-제3차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여 공비 3명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다.
1951년 11월 2일 진천에 공비들이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식량을 약탈한다는 정보에 따라 진천경찰을 포함한 충북지역의 경찰이 투입되었다. 이날 이 순경은 공비 2명 사살하고 계속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석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ㅋ-041호)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