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서(李炳瑞)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5700606
  • 전몰일자 : 19500721

공훈사항

이병서 하사는 경기도 연백군 유곡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자유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9년 1월 하순경 육군포병학교로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육본 직할인 포병단에 배치되었다.
한편 포병은 1948년 6월 26일 서울 용산에 제2포병훈련학교를, 경남 진해에 제3포병훈련학교를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년 11월 20일 제2, 3포병훈련학교를 해체하고 육군 잠정포병단을 설치하여 그 밑에 육군포병학교를 두었다. 포병단은 동년 12월 15일 포병사령부로 개칭되었고, 이는 1949년 6월 20일 다시 육군 포병연대로 개편되었으며, 포병연대는 동년 10월 15일 육군포병학교로 개칭되었다.
이병서 하사가 소속된 포병학교 제2교도(포병)대대는 1950년 6월 25일 저녁 10시에 “제2사단을 직접 지원하라”는 육군본부 명령에 따라, 6월 26일 새벽 1시부로 제2사단에 배속되었다. 제2사단(제5연대)은 26일 새벽에 축석령 지역에 투입되었고, 제2포병대대는 제2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26일 아침에 의정부 북방 상금오로 이동했다. 대대는 포를 방열하고 자일동 부근의 적을 향하여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105mm 야포의 화력도 북한군 T-34 전차의 진출을 막지 못했다.
이병서 하사가 소속된 제2포대는 6번포를 끌고 나와 포를 방열하고 적 전차가 50m 전방까지 다가오자 제1탄을 궤도에 명중시켰다. 적 전차가 비틀거리며 도로변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본 포반원이 제2탄을 장전하던 중, 적 전차에 의한 대응 사격을 받고 포반장 이하 포반원 전원이 전사했다. 한편 적 전차는 공격 진로가 막혀 한동안 지체되자 제2포병대대는 전 화력을 집중하여 사격했다. 이에 북한군은 위협을 느껴 다시 축석령 북쪽으로 물러났다.
이후 제2사단 및 제7사단 병력은 창동방어선으로 철수했다. 이병서 하사와 부대원들은 6월 27일 창동방어선 전투에서 포격전을 실시하다가 28일 새벽에 한강교가 폭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전포는 파기하고 한강을 건너 철수했다. 이후 국군은 낙동강 선으로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병서 하사는 1950년 7월 21일 제3사단 제23연대의 영덕 일대로 철수 작전에서 포반장으로서 포반원을 통제하며 포병사격을 지원하던 중 적의 대포병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서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0-ㅎ-05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