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상(李炳相)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285620
  • 전몰일자 : 19530717

공훈사항

이병상 하사는 1928년 1월 4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조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53년 1월 9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이 하사는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12사단 제52연대에 배치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제12사단이 창설되었는데, 사단은 1952년 11월 8일 강원도 양양에서 신편된 제53·55·56교육보충연대를 잠정 배속하여 창설되었다가, 12월 10일부로 이들 연대를 배속 해제하고, 중장비 연대로 개편 완료된 제37·51·52연대를 건제부대로 편성되었다.
사단은 12월 18일 인제로 이동하여 교육훈련을 끝내고, 12월 27일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0일 미 제45사단과 임무 교대하여 강원도 양구군 서화계곡을 감제하는 812-854고지를 잇는 전선을 인수했다. 제52연대는 사단 예비로서 진지교대 이후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현 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적은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로, 새로 투입된 중공군의 전투경험 축적과 아울러 방어선을 개선할 목적으로 6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 공세의 일환으로 사단 정면의 북한군 제3군단 예하 제45사단이 1953년 6월 1일부터 공격을 가해왔다. 사단 좌전방의 제37연대가 812고지를 탈취당하자, 연대는 역습을 감행하여 6월 10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지만 결국 812고지를 탈환하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7월 16일 적은 재차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 장병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분전했으나, 결국 812고지 동측의 쌍룡고지를 빼앗긴 채 휴전을 맞게 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끝까지 진지를 사수하다 적탄에 맞아 7월 17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상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47567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38판-3면-0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5-ㅂ-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