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삼(李炳三)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K1122595
  • 전몰일자 : 19511005

공훈사항

이병삼 일병은 1924년 3월 26일에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를 격퇴한 1950년 9월 3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 병으로 분류되어 미 제2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병삼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초순, 미 제2사단은 전주에 사단지휘소를 위치시키고 덕유산 및 지리산 일대로 숨어 들어간 잔적을 소탕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11월 2일부로 국군 제11사단에 인계하고, 북상하여 11월 15일에 개천 및 군우리 지역에 투입되어 공격준비를 했다. 당시 유엔군은 11월 24일에 2차 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하였으나, 이번에도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되어 11월 27일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이병삼 일병이 소속된 미 제2사단은 협곡지대인 일명 '태형의 계곡'을 통과하던 중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받고 철수하여 12월 1일에 평양에 도착했다. 이후 12월 중순에 충주 일대로 이동하여 미 제8군의 예비임무를 수행했다.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 때, 미 제2사단은 원주 동남쪽 고지에 투입되어 1951년 1월 6일부터 12일까지 고수함으로써 유엔군에게 반격의 여건을 조성했다. 이후 2월 11일 야간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맞아 지평리전투에서 제23연대는 주변 고지를 활용한 전면방어로 고수했다. 중공군이 막대한 손실을 받고 물러서자, 유엔군은 2월 21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였고, 미 제2사단은 원주-횡성-홍천-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9일에 화천저수지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미 제2사단은 5월 16일 개시된 중공군의 5월 공세 시에 벙커고지(800고지)를 고수함으로써 적의 돌파구 확장을 저지하고, 5월 24일에 반격으로 전환하여 5월 말에 인제를 점령하고 6월 중순경에 펀치볼 일대를 확보했다. 이후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행동을 하도록 했다. 이에 이병삼 일병이 소속된 제2사단은 공세행동으로 피의능선(983고지)을 탈취하고, 국군 제5사단을 초월하여 9월 13일에 단장의 능선(935고지)을 공격했다. 사단은 9월 26일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단장의 능선을 탈취했다. 이날 그는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5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1판-3면-04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90-ㅊ-08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