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복(李炳福)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64302
  • 전몰일자 : 19501031

공훈사항

이병복 하사는 경상남도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및 세부 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전 1950년 6월 초순경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서울 용산에 위치한 육본직할 헌병학교에서 헌병임무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배우고 육군직할 헌병사령부로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직할 헌병사령부는 미 군정 시절인 1947년 3월 15일에 군감대로 설치하여 운용하다가 1948년 3월 11일에 군기사령부(조선경비대)로 창설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되고 1948년 12월 15일에 병과 명칭을 헌병으로 변경했다. 이후 1949년 1월 16일에 서울 용산에서 헌병학교를 창설하여 헌병요원을 양성했다.
헌병사령부 헌병대는 1950년 6월 25일에 북한군이 전면적인 공격을 실시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즉각 의정부 지역으로 출동했다. 포천-의정부 축선은 제7사단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혼란에 빠져 무질서하게 철수하였고, 오전 11시경에 포천을 점령당했다. 이어 6월 26일 야간에 의정부가 함락되었다.
국군은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가 구성되어 6월 27일 새벽까지 창동방어선을 점령했다. 이곳은 서울 주변에 있던 모든 부대의 잔여 병력을 혼성으로 배치했다. 이날 정오가 조금 지나면서 적 전차에 의해 방어선이 돌파되자 병사들은 소총으로 저항하며 서울 방어의 최후 저지선인 미아리고개로 후퇴했으며, 6월 28일 새벽 2시에 한강교가 폭파된 것을 확인하고 철수했다. 이병복 하사가 소속된 헌병대는 후퇴하는 국군 장병들과 함께 낙동강방어선까지 이동하면서 질서유지와 낙오자 수집 및 원대 복귀시키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낙동강 선에서는 북한군 오열들이 후방을 교란하고 있어, 적 오열 색출 및 질서유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하여 10월 1일에는 국군 제3사단이 38도선을 돌파하고, 10월 26일에는 제6사단이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했다. 이병복 하사는 헌병요원들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하며 금천-사리원-평양-개천 지역에서 질서유지 활동을 실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통일을 향한 총공세를 펼쳤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복 하사는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하는 국군의 병력 수습과 교통통제, 낙오자 통제 등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0월 31일 중공군의 포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복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3-ㅊ-090)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