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범(李丙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8310
  • 전몰일자 : 19510620

공훈사항

이병범 일병은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전선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물리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적을 추격 중이었고, 제7사단도 추격 작전 중이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후,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공격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밀려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때 사단은 영월 일대까지 철수했고,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맞아 1951년 2월 17~18일 치열한 전투 끝에 영월을 지켜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사단은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고, 리퍼작전(3. 7.~3. 31.) 때는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다. 이때 사단은 4월 중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 4월 공세(4. 22.~30.)에 밀려 인제 서남방 소양강 변의 정자리 일대까지 후퇴했다.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5월 말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어 사단은 백석산(1,142고지)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발판인 917고지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앞장서서 적 장애물지대를 개척하다 적탄에 맞아 6월 20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5판-3면-20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ㅁ-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