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발(李秉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401596
  • 전몰일자 : 19500920

공훈사항

이병발 일병은 1929년 2월 14일 경상북도 상주군 외서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1950년 8월 중순 대구에 있는 대구방위사령부로 현지 입대하여 육본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대구로 이동함에 따라 임시수도인 대구 방위가 급선무가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7월 24일 제2사단을 해체하면서 육본 직할로 대구방위사령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사령부는 기구만 설치되었지 실질적인 병력이 없었기에 대구 방어를 위해서는 각 도에서 집결한 경찰병력, 청년방위대, 후방병력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동 사령부는 8월 1일 대구방어 및 팔공산 지역에 대한 경비를 위해 대구 동촌비행장에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병력은 대구 시내에서 모집한 신병들로 편성했고, 대원들은 일제 99식 소총으로 무장하여 전투 능력은 보잘 것 없었으나, 정신력만은 조국 수호의 투지로 가득 찼다.
이병발 일병이 입대할 당시에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 8월 공세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경비대대는 출동태세를 갖춘 상태에서 교육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구 지역은 1948년 11월 대구 주둔 제6연대가 반란사건을 일으켰고, 북한에서 파견한 유격대가 대구 인근의 산악지대에서 유격활동을 하는 등 전쟁 전부터 좌익 세력과 적 게릴라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8월 중순 전선이 왜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을 잇는 대구 북방에 형성되면서,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지방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 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적 게릴라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9월 19일 대구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경비대대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 전투에서 이병발 일병은 게릴라를 탐색하려고 수색을 하던 중 9월 20일 은거해 있던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발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2-ㅅ-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