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민(이병민)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382184
  • 전몰일자 : 19510218

공훈사항

이병민 이등중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 발발 이후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남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이 이등중사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12월 31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무렵 국군 철수과정에서의 부대간격을 이용하여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영주 방향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이에 제3군단은 군단 예비로 춘양에 집결 중이던 제3사단을 1월 14일 영주군 남대리 방면으로 추진하여 영월 일대의 제7사단과 함께 남북에서 협공을 펼치게 했다. 남대리 일대에 침투한 북한군은 제2군단 예하 제31사단이었다. 이 전투에서 제23연대는 녹전리 방면에서 공격하여 어래산(남대리 북서쪽 2km)을 점령하고 적을 격멸했다. 이로써 북한군 주력부대는 큰 타격을 입고 영월 방면으로 퇴각했다.
북한군 제2군단은 영월을 거점으로 계속해서 침투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제3군단은 영월을 탈환하기 위해 제7사단을 투입했다. 이때 연대는 제7사단에 배속되어 1월 19일부터 24일까지 북한군 제10사단을 물리치고 영월을 탈환하고, 이어 2월 10일까지 홍천 탈환전에 투입되어 전력을 다하여 싸웠으나, 홍천을 탈취하지는 못했다.
2월 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3군단이 라운드업 작전을 전개하여 반격을 했고, 이때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2월 10일 평창으로 북상하여 횡성 동북방의 제5사단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2월 11일 중공군은 횡성-원주 축선에 전력을 집중하여 2월 공세를 감행했다. 횡성 동북방에서 공격하던 연대는 중공군 제197사단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섬강 일대에서 혈전을 벌이면서 적의 전진을 저지했다. 연대의 선전으로 횡성 후방으로 우회 기동하여 유엔군의 퇴로를 차단하고자 하던 중공군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연대는 적의 전진을 지연시키며 횡성-원주 남동쪽으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 이등중사는 전투 시마다 앞장섰고, 이 전투에서도 소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2월 18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민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23판-7면-357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ㅍ-03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