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문(李炳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235658
  • 전몰일자 : 19510707

공훈사항

이병문 일병은 경기도 개평군 대성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준비 중이던 1951년 3월 초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하고 제2사단 제3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문 일병이 부대로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안동-속리산-제천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4월 28일에 청평 일대의 전방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중공군은 5월 16일부터 주공을 동부전선에 지향하여 총공세를 펼쳤다. 그들의 작전목적은 동부에 집중 배치된 국군을 격멸하여 서부전선의 미군을 고립시킴으로써 향후 유엔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데 두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서울 북방-마석-용문산-홍천-하진부리-대관령-강릉을 잇는 선에서 저지했다.
제2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 군단계획에 의거 5월 20일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최초에는 미 제24사단의 가평 진출을 엄호한 후 5월 24일부터 2단계 작전부터 38도선을 향해 본격적인 공격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제32연대는 청평-가평을 연결하는 도로의 감제고지에 배치된 적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하여 제압하고 6월 12일에는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사단은 유엔사 작전지침에 따라 공격 행동은 중지하고 방어진지 보강과 작전지역에 대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이병문 일병이 소속된 소대는 7월 7일에 방어진지 전방지역에서 수색작전을 하던 중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숨어있던 적 패잔병을 발견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문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6묘역-7판-1116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ㄲ-03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