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문(李炳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04381
  • 전몰일자 : 19521010

공훈사항

이병문 이등중사는 1929년 3월 3일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3월 28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2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일대에서 공산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강원도 인제 일대에서 적과 교전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4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 후 1,211고지에서 적과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양구군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739고지~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고, 9월까지 큰 전투 없이 현 전선을 유지했다. 그러다 9월 28일 중공군 제203사단이 사단의 전초진지인 피의고지 및 독수리고지에 공격을 가해왔고, 연대는 역습을 실시하여 백병전을 펼친 끝에 이 고지들을 지켜냈다.
이후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주저항선인 739고지 일대를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 매복작전 등을 지속했다. 이 이등중사는 10월 10일 매복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기습을 받자,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교전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문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23판-7면-3575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8-ㅈ-06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