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문(李丙文)

  • 군별 : 해군
  • 계급 : 군무원
  • 군번 : 081350
  • 전몰일자 : 19501214

공훈사항

이병문 군무원은 전라남도 승주군 해용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바다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1949년 12월 12일 해군 군무원으로 해군에 입대하여 LST 단양호에 배치되었다. 이 군무원은 신생 해군의 기반을 닦는 데 불철주야로 앞장섰으며, 해상경비와 함정 정비에 전념했다.
해군은 1949년 2월 14일 해상경비 임무 수행을 위해 정대(艇隊)를 설치했다. 제1정대가 함정 7척으로 서해의 38도선에서 군산까지, 제2정대가 함정 7척으로 동해의 38도선에서 진해까지, 제3정대가 함정 6척으로 군산에서 여수까지, 훈련정대가 함정 5척으로 여수에서 진해까지의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LST 단양호는 제1정대의 인천경비부에 소속되어 해상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단양호는 기관 고장으로 인천항에서 수리 중이었으나, 1950년 7월 4일 수리를 완료하고 군산항으로 철수했다. 단양호는 7월 20일 목포에 있는 정부미 80,000가마를 부산으로 수송했다. 북한군이 전남지역으로 진출하자, 단양호는 7월 24일 목포 피난민들을 승선시켜 부산으로 수송하고, 목포경비부를 외해로 철수시켰다. 단양호는 7월 27일부터 대흑산도 근해에서 서해에서 작전 중인 제1정대, 제3정대의 함정들에 대한 보급 지원업무를 담당하면서 도서 및 연안에 출몰하는 적색분자를 색출하는 등 서⋅남 해역에 대한 경비와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이 북진하자 대구에 있던 공군본부가 서울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때 단양호는 9월 27일 선견대 병력을 진해항에서 인천항으로 수송했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지역에서 철수를 단행하자 단양호는 1950년 12월 중순 흥남 철수작전에 투입되었다. 유엔군의 수송 선박은 국군을 포함하여 10만여 명의 유엔 지상군과 9만여 명에 달하는 피난민, 17,500대의 각종 차량과 350,000톤에 달하는 군수품을 철수시켜야 했다. 단양호는 12월 14일 LST 조치원호, FS(수송함) 왜관호, 대형 발동선 7척과 함께 철수부대와 피난민 수송작전을 수행했다. 이 군무원은 이 작전에 앞장서다가 이날 안타깝게도 전사했다(원인 미상).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문 군무원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1-ㅊ-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