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목(李炳穆)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6864
  • 전몰일자 : 19510315

공훈사항

이병목 일병은 1931년 4월 3일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후퇴하면서 조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하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2월 중순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18연대에 배치되었다.
제3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전 전선에 걸쳐 제3차 공세를 감행했고,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집중공격에 맞서 분전했으나 진지가 돌파당하자 평창으로 철수했다.
국군이 철수하자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교란하기 위해 북한군 제2군단이 중동부 전선으로 침투했다. 이 중 제31사단이 경상북도 영주군 남대리 일대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이때 제3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군단 예비로 경북 춘양에 집결 중이었다. 제3군단은 제3사단을 남대리 방면으로 추진시켜 영월의 제7사단과 함께 남북에서 협공을 펼치게 했다. 제3사단은 1951년 1월 14일 기동을 개시했고, 제18연대는 봉화를 거쳐 물야면으로 기동했다. 연대는 1월 15일 선달산(남대리 동쪽 5km), 남대리 남쪽의 1,097고지와 마구령을 목표로 공격하여 19일까지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북한군 제31연대의 거점인 남대리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호응하여 원주에서 영월을 거쳐 경상도 내륙으로 침투하려던 북한군 제2전선부대를 차단할 수 있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감행했다. 이때 연대는 미 제187연대전투단에 배속되어 횡성의 섬강 일대에서 중공군 제197사단과 혈전을 벌였다. 연대 장병들은 분전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짐에 따라 상급부대 명령에 의거 12일 원주로 철수했다.
2월 21일 유엔군의 킬러작전이 개시되었고, 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강원도 횡성군 강림-안흥-봉화산 방향으로 진격했다. 연대는 봉화산을 탈취하기 위해 3월 1일부터 4일까지 혈전을 벌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봉화산을 점령하지 못하고 정선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3월 15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목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19판-6면-0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ㅇ-07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