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만(李炳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701632
  • 전몰일자 : 19520420

공훈사항

이병만 하사는 1932년 1월 27일에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現 평창읍) 유동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한참 진행하던 1950년 10월 초순경 육군직할 독립 제2경비대대로 현지 입대하여 복무했다.
이병만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후방지역에서는 북한군 패잔병 및 유격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북으로 진격하는 시기에도 그치질 않았고, 중공군이 참전하자 더욱 심해졌다.
한편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에서의 공비토벌과 보급로 확보, 포로경비 등을 위해 1950년 11월부터 51년 4월까지 육본 직할로 14개 경비대대를 창설했다. 제2경비대대는 1950년 11월 24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하던 제5유격대를 개편하여 창설되었다. 이때 이병만 하사는 제2경비대대 창설요원으로 배치되었다.
제2경비대대는 육군 예비로서 경상남북도 일대에서 주보급로 경계와 적 게릴라 소탕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적 게릴라들의 유격활동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38도, 37도선까지 남하하자 더욱 극심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우익 인사에 대해 테러를 하거나 민간인을 납치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1951년에 접어들어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당한 북한군 패잔병들은 후방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던 지방 게릴라들과 합세하여 점차 전력을 재정비하고,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거나 전투근무지원시설들을 습격했다. 이들은 중공군이 남진하여 전선이 38도선으로 내려오자 전선 타격부대와 배합전술을 펼치면서 유엔군의 후방지역을 더욱 적극적으로 교란했다.
이와 같은 적 게릴라들의 유격활동은 1952년에 접어들면서 휴전회담이 지루하게 진행되면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제2경비대대는 4월 20일 경상북도 영천 일대 보현산 인근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즉각 출동했다. 이 전투에서 이병만 하사는 적 게릴라를 탐색하여 추격하다가 은거해 있던 적과 교전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만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3판-14면-874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ㄷ-06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