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만(이병만)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01278
  • 전몰일자 : 19510603

공훈사항

이병만 중위는 1928년 11월 4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0일에 부산 동래의 육군종합학교에 3기로 입소하여 6주간의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10월 말에 서울에 주요시설 경비임무를 수행하던 제17연대로 배치되어 소대장 임무를 수행했다. 유엔군의 주력이 북진작전을 실시할 때, 연대는 서울에 남아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제17연대는 11월 7일에 국군 제2사단이 재창설될 때에 예하 부대로 편성되어 포천-철원 일대로 이동하여 북한군 잔적을 소탕했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청천강을 건너 압록강까지 진격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으로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38도선 상의 양문리-탑두울 간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2사단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여주-제천을 거쳐 다시 안동지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1951년 3월 18일부터 30일까지는 통고산 일대로 이동하여 쌍전리-수하리-현동리-석포리-대덕산-사북일대-전두리-고양산-송낙봉-춘양 일대를 수색하여 잔적을 소탕하는데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후 4월 초순에 속리산 및 제천 지역으로 이동하여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하여 잔적들을 대부분 격멸하는 성과를 거두고 4월 28일부로 청평으로 이동하여 미 제9군단에 배속되었다.
군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병만 중위가 소속된 제2사단은 5월 24일부터 미 제24사단의 좌측에서 병행하여 산악지대를 공격했다. 5월 27일에 미 제7사단과 미 제24사단이 화천-사창리를 탈환했다. 미 제9군단은 5월 31일까지 전곡-철원-김화-화천을 잇는 와이오밍 선을 확보했다. 이병만 중위가 소속된 제17연대는 사창리-다목리-김화에 이르는 계곡통로의 우측 능선을 따라 계속 공격하였고, 그가 지휘하는 소대는 6월 3일에 다목리 부근에 적을 향해 공격하였고, 이날 그는 소대장으로서 선두에서 진두지휘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만 중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742국)를 추서하고, 그의 유해(15묘역-5판-15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1-ㅂ-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