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림(李炳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782
  • 전몰일자 : 19510627

공훈사항

이병림 일병은 전라북도 군산시 시흥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1101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제1101야전공병단은 낙동강방어선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8월에 창설되어 제1군단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유엔군이 반격으로 전환하여 북진하던 상황이었다. 제1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1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제1군단은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배속받아 작전을 했다.
제3사단은 동해안을 따라 포항-영덕-강릉-양양-고성-통천을 거쳐 10월 10일 원산, 17일 함흥을 각각 점령하고, 계속 북진하여 11월 말에는 길주, 혜산진까지 진출했다. 제1군단은 제3사단을 따라 진격하면서 양양-원산-함흥으로 이동했다. 청진, 혜산진까지 진격한 제1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1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제1군단과 제1101야공단은 18일 흥남에서 철수하여 묵호에 상륙했다. 북진작전 간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를 함으로써 전방의 수도·제3사단과 군단에 대한 보급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군단은 상륙 후 제9사단이 방어 중이던 관대리-현리-서림-양양을 잇는 선의 방어선을 인수하여 동해안 축선 방어에 임했다. 이후 군단은 삼척-양양-간성 일대의 동해안지구 전투(수도사단 및 제11사단)에서 남하하는 공산군을 저지 후, 1951년 4월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하여 실지를 회복하고 전선을 간성 일대까지 끌어 올렸다.
야공단은 제1군단에 예속되어 전방 사단 지원과 군단 후방지역작전을 위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주로 수행하면서, 때로는 후방지역에 침투한 적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 일병은 위험을 무릅쓰고 앞장서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군단 작전에 기여했으나, 1951년 6월 27일 강릉 부근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그의 위패(11판-5면-13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6-ㅅ-04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