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륜(李炳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503251
  • 전몰일자 : 19500820

공훈사항

이병륜 하사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7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하였으며,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병륜 하사는 문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문산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방어하였다. 북한군 제3사단이 1950년 7월 4일 새벽 공격을 개시하여 금곡리 부근으로 밀어붙이고 풍덕천-수원 도로를 따라 남진하자 일제사격으로 이들을 한때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곧 이은 북한군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돌파되고 결국 7월 4일 평택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7월 8일 음성을 중심으로 외곽방어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의 행군대열의 절반이 방어정면으로 들어섰을 때 105mm 곡사포의 지원사격 하에 각종 화기를 일제히 집중함으로써 적의 남진을 분산시켰다. 북한군 제15사단은 연전연패가 계속되자 9일 다시 무극리-음성, 신양리-음성 양측방 도로 접근로와 중앙 산간 접근로의 3개 방향에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새벽 무렵 북한군은 음성에 포격을 집중하면서 2개 연대병력을 각각 8대의 장갑차의 지원하에 연대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나 연대 장병들의 집중적인 저지사격과 역습에 의해 다시 저지되었다. 이 하사와 장병들은 지연전을 병행하며 7월 말 낙동강까지 철수하였다.
이병륜 하사와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다부동 전투를 수행하였다. 북한군은 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으나 매일 평균 600여명의 손실이 발생하여 병력이 날로 감소하였다. 이후 연대는 8월 19일 328고지에서 적과 수차례의 수류탄 공방전을 전개하면서 쟁탈전을 거듭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직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과 맞서 싸웠던 이병륜 하사는 1950년 8월 20일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ㅈ-02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