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룡(李秉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0005
  • 전몰일자 : 19520604

공훈사항

이병룡 일병은 경상북도 월성군 안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8월 하순 대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병기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북한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공방전을 펼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단은 형산강 변에서 북한군의 최후 공세를 물리치고, 반격으로 전환하여 9월 23일부터 적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강릉을 탈환하고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후 이 일병과 사단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진격하여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했다. 사단은 11월 25일 백암을 확보하고, 계속 북진을 하는 중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12월 10일 흥남에서 해상철수하여 구룡포, 묵호, 부산에 상륙했다.
사단은 12월 20일경 홍천으로 이동하여 소양강 변의 관대리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후 사단은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4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사단은 현리에서 적에게 포위당하여 험준한 방태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의 진지를 인수했다. 사단은 가칠봉 북서방의 1,211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10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북한군 제13·2사단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공방전을 펼쳤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973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다.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이후 사단은 주저항선을 보강하며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과 전투정찰등을 지속했다. 이 일병은 6월 4일 제23연대의 병기를 현장 수리하다 적의 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룡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8-ㄱ-03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