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래(李炳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300683
  • 전몰일자 : 19500925

공훈사항

이병래 하사는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 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병래 하사는 미원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7월 13일 미원 북방에서 방어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한군 제15사단이 괴산에서 부대정비를 마치고 16일 미명 미원 북방으로 공격을 개시하여 부흥리 일대에 배치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고 저지하였다.
이후 이 하사와 연대병력은 다부동 전투를 수행했다. 1950년 8월 초부터 8월 29일까지 고령에서 함창에 이르는 낙동강 전선에 북한군 제2군단(제3, 제13, 제15사단)을 투입하여 대구로 집중하여 유엔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저지 사격을 가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그들은 다부동 일대의 정해진 목표를 행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다. 대구 북쪽 16km에 위치한 가산(902m)은 중요한 감제 고지로서 다부동-대구간 도로와 대구까지도 감제 하는 전술적으로 중요한 고지로써 가산을 탈환하여야 하였다. 연대는 기병사단과 협조하여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주며 9월 14일에는 가산성 가장자리까지 진출하였다.
1950년 9월 16일 오전 9시 낙동강에서의 역사적인 반격작전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비로 예정되었던 공중지원이 취소되었으나 이병래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중앙의 계곡 접근로와 동 측방의 군위로 이르는 도로를 이용하여 신속히 북서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어 9월 22일 유학산 북방의 중요지형인 천생산을 점령하고 적을 소탕한 데 이어 대구에서 상주로 나아가는 도로상 옥골까지 진출하였다.
이 하사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선두에 서서 싸우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래 하사는 1950년 9월 25일 상주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래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2-ㅈ-00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