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득(李炳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500716
  • 전몰일자 : 19501022

공훈사항

이병득 일병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1931년 6월 6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이 일병은 1950년 9월 10일에 입대 후 삼랑진에 있는 제6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제8사단은 영천에 합류해 영천군을 방어하게 되었다. 영천군은 대구와 포항을 잇는 요충지로써, 제1군단과 제2군단을 연결하는 지점이었다. 만일 영천군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진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종심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에 제8사단 장병들은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기룡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 일병이 속한 제8사단은 9월 초 북한군의 막강한 화력에 직면하여 영천 읍으로 철수하게 되었으며, 읍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게 되었다. 곧이어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의 증원부대가 도착해 전세가 역전되어, 국군이 북한군 제15사단을 포위하게 되었다.
제8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한 후 9월 8일 영천군의 탈환을 시작으로, 북진과 반격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국군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이어 낙동강에서 국군 총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8사단은 정비를 완료하고 1950년 9월 20일 작전에 합류해 제2군단의 우익부대로서 정면의 적을 압도하며 진격을 거듭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9월 21일 적 1개 연대에 대하여 공격을 실시하였다. 또한 좌측의 제21연대와 협조하여 1950년 9월 22일 오전 6시에 영마산을 점령하였다. 1950년 9월 25일 구산동 부근의 북한군을 격파한 제8사단은 의성 부근에서 저항하던 북한군에 대해 포위섬멸 작전을 실시하였다. 피아간 치열한 전투 끝에 북한군은 분산되어 패주하였다.
제8사단은 1950년 10월 3일 양평지구의 적을 격파하여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서울에 도달했으며, 10월 8일에는 연천 남방에 도달해 적 1개 대대를 격파하여 철원을 점령하였다. 10월 15일에는 곡산지구를 장악, 일대의 잔적을 소탕한 후 석봉을 향해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진 과정에서 이 일병은 1950년 10월 22일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득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4판-7면-14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9-ㅅ-02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