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두(李丙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중위
  • 군번 : 212791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병두 중위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장교가 되기 위해 보병사관 후보생으로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소정의 군사교육을 받고 1951년 3월 31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5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이병두 중위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 공격을 개시하여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강원도 횡성 일대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했다.
이어서 사단은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횡성군 갑천면 포동리를 점령했으며,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이후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사단은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집중적인 공격(일명 2월 공세)을 받고 철수를 개시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영월군 주천리 일대에 新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병두 중위가 소속된 사단은 3월 3일부로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3월 5일에는 횡성 일대의 운교리-안흥리 지역으로 진출했다. 이어서 3월 7일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봉복산(1,028고지)을, 우측 전방 제35연대가 태기산(1,261고지)을 목표로 공격하여 3월 14일에 적의 최후 거점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 위치한 태기산을 점령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홍천 일대 신대리-백운동을 잇는 선으로 진출 후, 다음날 북쪽의 운무산-흥정산에서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4월 초순까지 부대정비와 위력수색에 주력했다.
그 후 사단은 4월 9일 소양강 도하작전을 감행하면서 다음날 공격을 개시하여 4월 19일에 목표인 인제 지역을 점령하고, 그 북방 봉화봉과 월하리 일대로 진출하여 캔자스선을 점령했다. 그러나 사단은 4월 24일 전선조정을 목적으로 인제를 적에게 넘겨주었다. 이병두 중위는 수색대 소대장으로서 4월 23일 소대원을 진두지휘하며 월하리 북쪽에서 적정을 탐색하던 중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는 전사 후 소위에서 중위로 추서되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두 중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ㅍ-067)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