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두(李炳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306255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병두 일등중사는 1930년 1월 13일 전라북도 장수군 선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제2여단 제3연대에 입대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자 제3연대는 동일 11시부로 동두천, 포천 축선을 방어하고 있던 제7사단에 배속되었다. 연대는 의정부 북쪽 태봉산(182고지)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에 투입되어 적의 남진을 지연했으나,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다 북한군은 T-34 전차를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없어 이날 의정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일등중사는 8월 중순 부상에서 회복되었고, 카투사(KATUSA) 병으로 차출되어 미 제8군 사령부에 배치되었다가 9월 20일에 미 제24사단으로 소속이 전환되었다. 이 무렵 미 제24사단은 김천-영동 방향으로 적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사단은 9월 28일에 대전을 탈환했다. 북진작전 간 사단은 미 제1군단의 조공으로 10월 14일 야간에 문산 일대에서 임진강을 건너 연안-해주-재령 방향으로 공격하여 18일 재령을 탈환하고, 19일에는 온정을 탈환함으로써 황해도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다. 한편 이날 국군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은 평양을 탈환했다.
미 제24사단은 10월 20일에 미 제1기병사단을 초월하여 숙천-신안주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24일에는 청천강 선을 확보했다. 그리고 10월 25일 유엔군의 추수감사절 총공세 시에 사단은 청천강을 도하하여 박천에서 정주-선천 방향과 태천-구성 방향으로 나누어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태천-구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순조롭게 진출했으나, 청천강 선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철수했다. 동쪽의 국군 제1, 제6사단이 적유령산맥에 은폐해 있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후방이 차단되자, 미 제24사단도 후방이 차단될 위협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공군 11월 7일부로 산악지대로 자취를 감추고 유엔군과의 접촉을 피했다. 이에 유엔군은 주력을 청천강 선에 배치하고 적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11월 24일에 크리스마스 총공세(2차 총공세)를 실시했다. 이번에도 미 제24사단은 13km를 전진했으나, 중공군의 기습적인 측후방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용감하게 앞장서서 싸우다 11월 26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두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0473 국)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29판-2면-25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4-ㅅ-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