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두(李炳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59952
  • 전몰일자 : 19510101

공훈사항

이병두 일병은 1926년 12월 3일에 경상북도 영주군 영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던 10월 중순에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본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12월 초순에 재창설된 제2사단에 배치되어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보직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병두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사단 작전지역에 대한 적정 수집이 주요 임무였다.
한편 유엔군의 주력은 압록강을 향해 진격했다가 중공군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친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다. 이에 제2사단은 철수를 엄호한 후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이병두 일병이 소속된 수색대는 적진에 침투하여 적 주요시설에 대한 정보수집과 습격임무를 실시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이병두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대규모의 중공군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사단 장병들은 전투력의 열세로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했다.
이병두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에서 적 지휘소와 보급소를 습격하며 적들의 후방을 교란했으나, 적들의 반격도 매우 강했다. 이날 수색소대는 적 연대지휘소를 습격하여 큰 피해를 주었으나,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두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ㄲ-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