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두(李丙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802676
  • 전몰일자 : 19520313

공훈사항

이병두 이등상사는 1927년 1월 29에 강원도 횡성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5월 1일, 경기도 부평에 위치한 제1육군병원에 입대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은 후 의무병이 되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침략했을 때, 국군은 방어체계가 와해되어 3일만에 서울을 적에게 빼앗겼다. 불행 중 다행히도 동부전선의 제6, 제8사단이 조직적인 방어로 춘천-홍천 선에서 3일간 지연하여 체계적인 철수를 함에 따라, 서부전선의 병력들이 큰 피해를 받았음에도 한강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후 유엔군의 신속한 지원으로 낙동강방어선으로 조직적인 철수를 할 수 있었다.
이병두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육군병원은 전쟁 초기에 쏟아지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1950년 6월 28일에 대구로 이동하여 치료에 전념했다. 북한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공세를 펼쳐 부산으로 진격하여 전쟁을 종결하고자 하였고,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더는 물러설 수 없다고 각오하고 북한군의 공세를 격퇴하는 데 성공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낙동강방어선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그 결과 전사상자는 속출하였고, 의료진들은 잠시도 쉴새 없이 치료에 전념했다.
한편 1950년 9월 15일에 제15육군병원을 창설할 때, 이병두 이등상사는 창설요원으로 전속되었다. 이후 제15육군병원은 국군 제1군단을 따라 10월 26일에 원산으로 이동하여 현지 병원시설을 점령하여 운영하였고, 이후 11월 17일에는 함흥으로 이동하여 함흥도립병원을 접수하여 병원으로 운영하였다. 개원 당시에는 환자가 많지 않았지만 미 해병대가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하고, 국군이 함경북도 청진으로 진격하면서 전투가 가열되자 전사상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려 왔다.
이후 전방부대에 출동하여 전투 또는 훈련 중 부상당한 장병들을 치료했다. 그러던 중 이병두 이등상사는 전방부대의 의무지원을 위해 금성 일대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을 도와 부상 장병들을 치료하다가 1952년 3월 13일 적이 투하한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두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7-ㄷ-05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