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동(이병동)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704955
  • 전몰일자 : 19501102

공훈사항

이병동 하사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선으로 철수를 거듭하고 있을 때인 1950년 7월 22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제1사단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이병동 하사가 전선에 투입될 무렵 사단은 함창에서 북한군을 저지하고 있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사단은 8월 1일 야음을 이용하여 낙정리로 이동, 왜관에서 낙정리까지 도상거리로 42km 정면을 담당하는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다음날 나루터에서 선박으로 낙동강을 도하 하여 3일 저녁까지 신진지의 점령을 완료하였다.
이 하사와 사단 병력은 선산-상주-보은을 거쳐 미원으로 진출하면서 낙동강 전선에서 소백산맥의 험한 준령을 따라 북으로 도주를 시도하던 적 제2, 제3, 제4, 제7, 제9사단 등 여러 사단들의 패잔병을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소탕하였다. 이 하사와 사단 장병들은 계속해서 증평, 괴산, 진천, 음성 등에서 잔적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후 이 하사가 소속된 제1사단은 신계를 점령한 후 신계 서쪽 2km 지점인 삼거리로부터 신계-수안 도로를 따라 진격 중이었다. 사단은 10월 15일 보·전 협동 부대의 선도 하에 일몰 직전까지 약 30km를 진격하여 수안 남쪽 하유리까지 진출하였다. 이 하사와 장병들은 10월 17일 38도선 돌파 이후 일일 진출 거리로서는 최고기록인 42km를 진격하여 평양 동남쪽 26km 지점 상원-율리 선을 점령하였다.
이병동 하사와 장병들은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임진강-토산-신계-수안-상원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하였고, 10월 19일에는 사단과 함께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는 수훈을 세웠다. 이어 10월 24일 오전 11시 안주에서 청천강을 도하 한 후 운산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1시간 이상 격전을 치렀으나 적은 물러날 기세가 전혀 없었다. 이때 용산동 동쪽 영변 방향에서 전차 1개 소대가 용산동 후방으로부터 돌입하면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하자, 적은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압록강을 향해 진격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였던 중공군의 대병력이 기습공격을 감행해왔다. 그로 인해 이병동 하사는 1950년 11월 2일 운산 전투에서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동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737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10-ㅊ-06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