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도(李秉陶)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153669
  • 전몰일자 : 19510105

공훈사항

이병도 하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중순에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당시 재창설된 제2사단 제31연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 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얼마 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병도 하사가 소속된 제31연대는 홍천 일대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말과 11월 말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해 두 차례에 걸쳐 총공격을 실시했으나,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다시 38도선 일대로 철수했다. 제2사단 장병들은 12월 초에 장병들과 함께 중공군 침공 시기와 때를 맞춰 더욱 기승을 부리던 북한군 패잔병들을 소탕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월 8일에 제2사단은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방어선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수령하고, 12월 13일경에 방어진지구축을 완료했다. 그는 방어진지 보강에 힘쓰며 곧 다가올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주공격 방향으로 정하고 총공세를 감행했다. 일명 중공군의 신정공세였다. 이병도 하사는 방어진지에서 조금도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웠다. 그러나 사단은 후방이 중공군에 의해 차단되면서 방어진지에서 하룻밤도 버티지 못하고 와해 되었다. 장병들은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가평으로 철수하였다. 그가 소속된 대대는 1월 5일에 가평을 거쳐 여주로 철수하던 도중에 후방을 차단한 적 부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또 한 번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철수해야 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도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18-ㅋ-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