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도(이병도)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33302
  • 전몰일자 : 19510219

공훈사항

이병도 일병은 평안남도 중화군 농동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자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 초순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평택-삼척을 연결하는 37도선 상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고, 제7사단은 횡성 일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 북한군 제5군단이 원주 지역에 깊숙한 돌파구를 형성하고, 제2군단이 경북 안동까지 종심깊게 침투함에 따라 연대는 또다시 철수하여 1월 8일 영월 북서방의 서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3사단 제23연대를 제7사단에 배속하여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제3연대는 1월 19일 사단의 주공으로 만경대산을 공격하여 이를 점령하고, 20일 영월 탈환의 관건이었던 응봉산을 공격하여 치열한 교전 끝에 이를 점령했다. 이어 연대는 24일 영월로 진격하여 이를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2월 5일 개시된 유엔군의 라운드업작전(위력수색작전) 시 연대는 적의 경미한 저항을 물리치고 2월 10일 평창 북방의 창동리까지 진격했으나, 곧 적의 공세에 직면하게 되었다. 2월 11일 중공군은 제4차 공세(2월 공세)를 개시했고, 이때, 돌파구의 견부인 횡성 동북방에 배치되었던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진지를 사수하며 용감히 싸우다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2월 19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도 일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5220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위패(06판-6면-10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8-ㅎ-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