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덕(李秉德)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1279
  • 전몰일자 : 19521023

공훈사항

이병덕 하사는 1932년 6월 3일에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이 38도선 상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3월 말,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5월 중순에 제2사단 제1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덕 하사가 부대에 배치되었을 때, 제2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청평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즉각적인 반격작전으로 6월 15일에 적근산-육단리를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김화-금성진공작전을 실시하여 주방어선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들을 확보했다.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가 장기간 계속되었고, 사단은 사창리 일대에서 야외기동훈련으로 전기전술을 숙달하였다. 이후 몇 번의 부대교대를 거친 뒤 1952년 6월 1일부로 미 제9군단에 재배속되어 군단의 예비가 되었다. 1952년 6월 30일부로 김화 동쪽의 남대천 일대의 방어진지를 미 제40사단으로부터 인수하여 진지보강과 교육훈련에 집중했다. 그런데 공산군이 휴전협상을 지연시키며 군사력을 증강하자, 유엔군은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공세 행동을 강화하기로 했고, 이에 이병덕 하사가 소속된 제2사단은 군단명령에 의거 오성산 남쪽의 중공군 전초지역인 저격능선을 공격하기로 계획했다. 저격능선은 방어진지 전방의 주요 감제고지로서 오성산을 공격할 때 발판을 제공할 수 있는 요충지였다.
이병덕 하사가 소속된 제17연대는 10월 14일에 사단의 선두부대로 공격을 개시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했다. 이에 오성산 일대에 배치되어 있던 중공군 제15군이 그날 밤부터 역습을 감행하였고, 이후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공방전이 끈질기게 이어졌다. 연대는 10월 20일에 저격능선을 탈취한 후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에 걸쳐 격퇴했다. 그리고 10월 23일에 저격능선을 방어하던 중 적의 공격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저격능선을 탈취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나, 전투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덕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681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0-ㅍ-06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