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덕(李炳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86079
  • 전몰일자 : 19510229

공훈사항

이병덕 일병은 경기도 화성군(現 화성시) 송산면 마산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하순경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6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병덕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1·4후퇴로 37도 선의 평택-안성선까지 물러난 국군과 유엔군이 전력을 회복 후 총반격을 개시하면서 23만 명의 대병력으로 서울재탈환 작전을 실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를 저지한 다음 1951년 2월 5일부로 홍천 포위공격을 개시했다.
이병덕 일병이 소속된 좌측 전방 제36연대가 강력한 적의 저항으로 진출이 곤란하자, 사단은 2월 7일 제36연대를 지원하기 위해 예비인 제35연대를 좌측 전방에 투입함으로써 3개 연대 병진대형으로 공격을 재개했다. 사단은 2월 9일에 적 주력이 4일 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방어거점인 317고지-412고지-247고지를 돌파하고 섬강 남쪽으로 진출했다. 계속해서 사단은 북한군 제6사단의 지휘소가 위치한 강원도 횡성 일대 포동리를 점령하였으며 이때 적 지휘소를 수색하여 다수의 문서와 탄약 25상자를 노획했다. 홍천 우측방의 목표 점령을 앞둔 사단은 2월 10일에 대규모 중공군의 기동을 확인하고 야간 방어로 전환했다.
마침내 2월 12일 아침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받고 방어진지에서 철수를 개시하였으며 점령하여야 할 원주-평창선보다 남쪽으로 계속 철수하여 제천 북쪽으로 이동했다. 사단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중공군은 2월 14일부터 16일까지 국지적인 탐색전만 전개하며 재공격을 실시하지 않았다.
중공군의 2월 공세 이후 3월 초순까지 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며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했다. 이병덕 일병은 2월 29일 충청북도 괴산군 신흥리 일대에서 분대원과 함께 수색정찰 중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덕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2-ㅋ-044)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