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덕(李炳德)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8102779
  • 전몰일자 : 19501110

공훈사항

이병덕 이병은 1931년 12월 28일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에서 출생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낙동강 선까지 철수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이병은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그는 1950년 9월 2일 제3사단 제23연대에 입대했다.
이 이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맞이하여 최후의 일전을 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포항 일대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 중인 상황이었다. 9월 5일 새벽 적은 최후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는 3시간여에 걸쳐 완강히 저항했으나 결국 방어선이 붕괴되어 형산강 변으로 철수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5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마침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연일을 탈환한 후 총반격 태세에 들어갔다.
제3사단은 9월 22일 반격작전으로, 23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연대는 일일 평균 17.3km의 속도로 진격하여 9월 30일에는 강릉을 탈환했다. 연대는 10월 1일 인구리 북쪽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진함으로써 최초의 38도선 돌파부대가 되었다.
이 이병과 연대 장병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가도를 따라 양양, 거진, 장전, 통천을 점령하며 진격했고, 10월 10일 완강히 저항하는 적을 물리치고 원산을 점령한 후 11일까지 시내의 잔적을 소탕했다.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사단 전 장병에게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사단은 미 제10군단의 안전한 원산 상륙을 보장하기 위해 10월 15일까지 원산 외곽선을 확보하고 잔적을 소탕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25일까지 이 외곽선을 계속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했으며, 연대는 원산비행장과 고저-안변지역의 경계를 맡았다.
10월 26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1해병사단에 원산 경계 임무를 인계한 사단은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하기 위해 함흥에 집결했다. 연대는 11월 4일 신포로 이동했다가 9일 흥원으로 이동하여 제1군단사령부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적의 습격을 받아 11월 10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덕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5판-8면-0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26-ㄱ-08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