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대(이병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704843
  • 전몰일자 : 19510102

공훈사항

이병대 일병은 출생 일자 및 장소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지연전을 하던 1950년 7월 22일, 대구의 육군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기본군사훈련을 받을 때에 부상을 입고 동기들보다 늦은 11월 초순에 재창설된 제2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면서 제17연대와 신편 된 제31,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재창설 직후 사단은 지휘소를 서울에서 가평으로 이동하고, 제17연대는 철원, 제32연대는 의정부, 배속된 제5사단 제35연대는 구화리 일대에 배치시키고, 제31연대는 제5사단에 배속되어 홍천 일대에서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의 기습으로 38도선으로 철수할 때, 제2사단은 상급부대 명에 의거 12월 8일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사단 장병들은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진지구축과 철조망 및 지뢰지대 설치 등 방어준비를 강화했다. 그는 사단 수색대 장병들과 함께 적 침투를 거부하기 위해 수색작전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드디어 제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시작하여 서울을 압박했다. 제2사단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며 적의 공세를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적은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며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이에 사단 장병들은 중공군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다음 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진지에서 이탈하여 청평으로 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적들이 후방을 차단한 상태여서 차단선을 돌파해야 했다. 이날 그는 1월 2일에 선두에서 용감하게 적 차단선을 돌파하다가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대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11-ㅌ-07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