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달(李炳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8886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병달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8월 6일 제1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소총병으로서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달 일병이 소속된 연대병력은 8월 12일부터 다부동-군위 일대에서 대구를 방어하게 되었다. 13일 다부동지역에 집결한 후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기 위하여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신주막 일대의 계획된 진지로 진출하였다. 이 무렵 북한군 제3사단 일부 병력이 약목 일대에서 도하하여 328고지로 공격하고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 제1사단보다 한발 앞서 유학산에 진출하여, 북한군 제13사단은 도로를 따라 신주막으로 진출 중인 연대 정면으로 접근하면서 일부 병력을 우회시켜 미쳐 연대가 병력을 배치하지 못한 674고지를 선점하였다. 이로 인해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방어선 중앙이 돌파되고 다부동이 점령당하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8월 15일부터 다시 총공격을 재개하였으나 전차 7대를 앞세운 북한군 연대 규모의 공격을 받아 복곡 일대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어 이병달 일병과 연대병력은 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전투를 수행하였다. 당시 북한군은 제1사단이 방어하고 있는 지역에 5개 사단을 집중해 집요한 공세를 계속하고 있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유엔 항공기의 지원을 받아 북한군 전차를 파괴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방어에 임했으며, 끊임없이 달려드는 적들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응전하였다.
9월 공세가 시작되자,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741고지-팔공산 북방 중앙선까지 담당하여 대구 북쪽의 방어진지 편성에 주력하였으며 목표를 향해 수차례 공방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하던 이병달 일병은 1950년 9월 1일 조교동 부근 전투에서 푸른 청춘의 꿈을 남겨둔 채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1-ㄹ-04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