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노(李丙魯)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725

공훈사항

이병노 순경은 1919년 5월 15일 전북 곡성군 팔봉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군산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나주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치안국은 전시 비상경비총사령부 체제로 전환했다. 6월 28일 서울이 함락되고 군경부대가 남쪽으로 후퇴함에 따라 군산경찰은 군산-서천, 군산-곡성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와 군산항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한강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계속 남진하자 전북경찰국은 비상경비총사령부 지시에 따라 각 서(署)의 일부 병력을 차출하여 충남지구의 지연전에 참가하도록 조치했고, 잔여 경찰병력으로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북한군의 남진에 대비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하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북한군 제6사단은 7월 20일 전주를 점령하고 잠시 부대를 정비한 후 7월 22일 공격을 재개했다. 북한군 제13·제15연대는 국군과 경찰의 저항을 뚫고 7월 23일 장성·광주를, 7월 24일 화순·나주·장흥을 점령하고 보성 방면으로 진출했고, 제1연대는 7월 24일 남원을 점령 후 구례-순천으로 남진했다. 이에 전남편성관구사령관은 순천·광산 인근의 경찰과 각지에서 물러난 경찰을 3개 부대로 재편하여 적을 저지하도록 했다.
군산에서 북한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군산경찰은 7월 20일 군산경찰서가 적에 의해 점령당하자 축차적으로 후퇴를 하여 7월 25일 나주까지 이동했다. 이곳에서 군산경찰은 나주경찰을 지원하여 나주-광주, 나주-영광을 잇는 주보급로 경비, 철도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이 순경은 7월 25일 나주-광주를 잇는 주보급로 경비를 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용감하게 싸웠으나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노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ㄴ-013)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