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남(李秉男)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501297
  • 전몰일자 : 19510304

공훈사항

이병남 일등중사는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38도선 일대에서 북한군의 도발이 잦았던 1949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수도사단 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병남 일등중사가 소속된 연대는 9월 전개된 기계-안강전투에서 북한군 제12사단을 격퇴함으로써 북한군의 낙동강 방어선 돌파를 저지하였다. 이 일등중사와 장병들은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한 후 10월 10일 원산을 점령, 확보하기 위해 원산시가를 감제하는 고지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189고지-136고지 산속의 과수원 일대에 잠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전차포 3문과 직사포의 포격으로 진출이 저지되었다. 이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1월 25일 청진을 점령하고 30일에는 부령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1일 청진에서 철수한 후 12월 17일 흥남항에서 철수하였다.
이병남 일등중사와 연대병력은 1951년 1월 10일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한 후, 2월 3일 공격을 개시하여 2월 7일 강릉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2월 11일에 개시된 중공군의 제4차 공세에 전 전선이 밀리게 되자 다시 송계리-삼척 선으로 철수하였다. 이후 2월 25일 북한군의 저항이 경미하여 사단의 공격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미 제7사단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하여 속사리로 진출하려 하였다. 그러나 5일간이나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대관령-횡계리-구산리 간의 도로가 차단됨으로써 공격이 지연되었고, 제설작업 끝에 3월 1일에 이르러서야 경강국도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1개 대대를 투입하여 2개 대대 병진공격을 개시하였고, 2일에는 하진부로 진출하여 접적이 개시되었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는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던 이병남 일등중사는 포위 공격을 시도하는 북한군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쳤으나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1951년 3월 4일 월정리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남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0412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04-ㅁ-06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