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남(이병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751011
  • 전몰일자 : 19511028

공훈사항

이병남 일병은 1925년 7월 3일 전라남도 승주군 황유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9월 15일 제3사단에 현지 입대하여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의 신캔자스선(화천-펀치볼-향로봉-간성을 잇는 선) 일대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전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3사단은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제5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가칠봉과 서희령 일대의 진지를 인수했다. 미 제10군단장은 1,052고지와 1,211고지를 탈취하여 남으로 만곡부를 이루고 있는 전선을 정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사단은 제22연대를 투입하여 1,052고지를 탈취하도록 했고, 연대는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치열한 공방전 끝에 동 고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곧이어 제23연대가 1,211고지 탈취를 위해 공격작전에 투입되었다. 1,211고지는 가칠봉 북서쪽 약 1km 지점에 있는 고지로서, 제5사단이 1951년 8월 3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치열한 공방전 끝에 3번이나 점령하고도 끝까지 고수하지 못했던 고지였다.
연대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13·2사단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전투를 종료했다. 이 전투에서 수색중대는 제23연대에 배속되어 전투에 투입되었고, 이 일병은 끝까지 진지를 지키며 용감하게 싸우다 10월 28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남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52묘역-1판-2714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3-ㅇ-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