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남(李炳南)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802612
  • 전몰일자 : 19510206

공훈사항

이병남 이등중사는 강원도 울진군 울진읍에서 1926년 6월 16일에 출생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1948년 2월 26일에 입대 후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의 입대 후 제8사단 제10연대는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의 압도적인 공세로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영천 지역에서 1950년 9월 16일 반격을 개시하여 1950년 10월 8일 38도선을 회복하고 계속 한·중 국경선으로 북진했다. 그러나 연대는 중공군의 1, 2차 공세로 38도선까지 후퇴하였다. 제8사단 제10연대 장병들은 평안남도 강동군 흑령산 일대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을 방비했다.
제8사단 10연대는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하였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열세한 상황에서 적을 추격하였지만, 좌·우측방으로부터 끊임없이 돌진하는 북한군을 상대로 방어하기엔 형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8사단 10연대는 치열한 교전을 통해 520고지를 최종적으로 확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여전히 520고지 일대를 재탈환하기 위해 지속해서 국군의 방어진지를 침투하며, 야간 공격도 감행했다. 제8사단 10연대는 520고지 일대 능선에 각각 배치되어 산병호를 구축하고 날이 저물어도 사주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은 1950년 12월 31일부터 북한군과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직면했다. 제8사단 10연대의 정면으로 중공군 제66군 소속 제196·제197·제198사단이 진격해오자 제8사단 10연대는 당시의 혹한과 강설로 진지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적의 주 접근로에 지뢰와 장애물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제8사단 10연대 장병들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좌·우측 전선이 돌파되었기에 강원도 홍천군 방면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등중사는 1951년 2월 6일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철수 작전을 엄호하던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남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1-ㄷ-00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