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길(李炳吉)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902062
  • 전몰일자 : 19510921

공훈사항

이병길 이등상사는 1929년 3월 3일 서울시 영등포구 양남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4월 25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병길 이등상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1950년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후퇴를 시작하게 되자 함경도 지방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만약 그들이 어떤 적절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38도선에 이르기 전에 공산군의 진격이 피난민의 대열을 앞지를 것이 자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2월 9일을 전후하여 성진, 함흥, 흥남, 원산 등의 항구에는 피난민들로 큰 혼잡을 빚었다. 이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12월 14일 함흥과 흥남으로 철수하던 중 치열한 교전을 벌여 북한군을 저지한 후 17일 흥남에서 묵호항으로 해상 철수하였다.
이병길 이등상사와 연대는 중공군의 제3차 공세를 맞아 1951년 1월 3일 양양 남쪽에 있는 원포리 일대에 진지를 점령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강릉에 방어진지를 강화하면서 2월 25일부터 북한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속사리 부근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이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3월 9일 속사리 일대 적 지역을 위력 수색해 북한군을 멀리 구축하였고 3월 26일 제2차로 38도선을 돌파한 후 계속 진격하여 4월 15일에는 캔자스선의 동단 남가리로 진출하였다.
5월 7일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시작되어 설악산 부근의 사단 주저항선이 돌파되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이어 6월 3일 오후 3시에 북한군 1개 중대 규모가 선제 기습공격을 통해 칠절봉 부근 주저항선 돌파를 기도하였으나 격퇴되었다. 이후 이 이등상사와 연대는 8월 18일부터 23일까지 미 제8군의 작전에 참가하여 서화리 동북방의 924고지를 점령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전투에 임했다.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사력을 다해 분전하던 이병길 이등상사는 1951년 9월 21일 강원도 고성에서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길 이등상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해(11묘역-5판-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5-ㅌ-05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