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기(李秉基)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68214
  • 전몰일자 : 19521009

공훈사항

이병기 하사는 1927년 1월 20일 전라북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포로교환 문제로 휴전협상이 지루하게 진행되던 1951년 11월 28일 육군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5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병기 하사는 두매리 전투에 투입되었다. 양측은 서부전선에서 대규모 공세를 자제하였으나 신경전과 소규모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 일대에서 제15연대를 예비로 확보하고 북한군과 대치중이었다.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달려드는 북한군을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 끝에 마침내 북한군을 격퇴하였다. 수차례 반복된 북한군의 역습을 받아 그때마다 전 화력을 집중하여 북한군의 접근을 저지하였으나, 탄약이 소진되고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전력이 급격히 감퇴되어 29일 오후 다시 철수하고 말았다.
1952년에 접어들어 두매리 고지가 주요 감제고지이며 차후 공격의 전진 발판이므로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월 3일 오전 8시 일제히 포문을 열고 두매리 고지 일대를 집중 사격하였고 적진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 하사가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의 역습을 받기 시작하여 진내에서 백병전까지 실시하면서 북한군을 저지하였다. 이후 이 하사와 연대 장병들은 7월 13일부터 경남 밀양으로 이동하여 운문산-신불산 지구에서 공비 소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병기 하사와 연대병력은 불모고지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간 1952년 10월 1일 제1사단은 군단예비에서 군단의 중앙 미 제3사단의 작전임무를 인수하여 임진강 동서안, 역곡천 남안을 연한 주저항선을 방어하게 되었으며 텟시 고지 및 니키 고지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여 준비를 갖추면서 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선두에 서서 용맹을 발휘하였다.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병기 하사는 1952년 10월 9일 고양대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기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5판-8면-264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14-ㅋ-06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