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기(李炳璣)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5601377
  • 전몰일자 : 19520629

공훈사항

이병기 일등중사는 1930년 4월 4일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읍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일등중사는 1950년 9월 4일 공병하사관교육대에 입대하여 공병 주특기교육을 받고 제1102야전공병단에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낙동강방어선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50년 8월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제2군단은 1950년 7월 12일 경북 함창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의 다부동, 영천 등의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제2군단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3일 추격작전으로, 10월 5일 북진작전으로 각각 전환했다. 군단은 북진작전 때 제6·7·8사단을 배속받아 작전했다. 제2군단은 진격하는 제6·7·8사단을 지휘통제하며 양평을 경유하여 10월 3일 서울의 보성중학교로 이동했고, 이후 포천-평강-곡산-평양-개천으로 북진했다. 이때 공병단은 주보급로와 교량 건설·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초산, 희천까지 진격한 제2군단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12월 2일부터 숙천-성천 선, 평양 북방 선, 예성강-시변리 선, 38도선 상으로 축차적으로 진지를 점령하며 지연전을 펼쳤다.
12월 31일 개시된 중공군 제3차 공세(신정공세) 때 군단은 중동부 축선을 방어하다 적의 압도적인 공격에 철수하여 인제 남방의 부평리-관대리 간의 방어선을 점령했다. 이후 군단은 대전으로 이동하여 공비토벌작전을 담당하다 1951년 1월 10일 해체되었다. 이후 제1102야공단은 백야전전투사령부의 작전을 지원하다 1952년 2월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동해안 지역의 보급로와 교량 설치 및 보수, 비행장 보수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제2군단이 1952년 4월 5일 재창설되었고, 국군 제3·5·6·8사단을 배속받아 중동부전선 방어를 담당했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군단은 큰 전투 없이 전초진지 쟁탈전과 수색정찰, 매복 작전 등의 작전을 수행했다. 이 일등중사는 공병 선임하사관으로서 소대원을 이끌고 솔선수범하며 다양한 임무를 완수해 왔다. 하지만 그는 1952년 6월 29일 강원도 화천 일대의 주보급로 보수 작업 중에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기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87-ㄱ-08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