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근(李炳勤)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5101147
  • 전몰일자 : 19510328

공훈사항

이병근 일병은 전라북도 전주시 주안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과 자유를 지키고자 1949년 3월 2일 제6여단 제8연대에 입대했다.
제8연대는 1950년 6월 20일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에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연대는 김포, 영등포 일대에서 적과 싸웠고, 진천-미호천-보은-안동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다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3·5연대와 함께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어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연대는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 후, 20일 북한군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함으로써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11월 초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격퇴함으로써 중공군과의 대결에서 처음 승리하는 부대가 되었다. 연대는 묘향산 전방에서 중공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는 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은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자은리를 거쳐 횡성 북방으로 철수했다. 1951년 1월 중순경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24일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에 배치되었던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연이은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강원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후 연대는 지역 내 잔적을 소탕하면서 속사리-창촌-현리 방향으로 계속 진격하여 3월 하순에는 인제군 현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맞아 3월 28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2-ㄹ-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