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근(李炳根)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2805266
  • 전몰일자 : 19501111

공훈사항

이병근 일병은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세력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스럽던 1950년 3월 중순에 옹진반도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에 배치되었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병력의 열세와 지형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용감하게 싸웠으나 26일 아침에 더 지탱하지 못하고 육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인천으로 철수했다. 이후 연대 장병들은 대전의 육본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가 투입될 때 갈곶리 전투에 참가하고, 이후 수도사단에 배속되어 보은-상주 일대에서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안동에서 전투를 치룬 후 육군 예비가 되었다가 8월 중순에 포항지구전투사령부 소속으로서 낙동강방어선상의 기계-안강지역에 투입되었다. 이곳에서 연대는 9월 12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병근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육군 중에서 유일하게 인천상륙작전부대로 선발되었다. 연대는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그리고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 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하고자 했다. 그 결과 9월 25일에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도하하여 남산을 공격했고, 계속 동쪽 지역으로 공격하여 신속히 적들을 소탕했다.
국군과 유엔군 주력이 10월 1일을 기점으로 38선을 돌파하여 북진작전을 감행할 때, 제17연대는 서울에 남아 대통령실과 정부 청사 등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임무를 수행했다. 아울러 서울 및 경기도 일대에 미처 도망가지 못하고 교란 활동을 일삼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병근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11월 11일에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고 소탕작전을 실시하여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근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197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ㅊ-04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