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근(李丙根)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25

공훈사항

이병근 순경은 1926년 12월 17일 전북 정읍 영원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부안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곡성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여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전북도경은 비상경비체제로 전환하고 도내 관할 경찰관서로 하여금 전투태세에 돌입하도록 했다. 부안경찰은 전투태세를 강화하며 지역 내 주요시설 경비, 부안-군산, 부안-김제, 부안-정읍을 잇는 주요 도로 통제,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계속 남진하여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용안, 망성 방향으로 진격했다.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배치된 전북경찰 제1대대와 제3대대 병력 700명은 15시간의 공방전 끝에 적 35명을 사살하고 강경을 수복했다. 7월 19일 북한군 사단 규모의 재공격으로 부안경찰을 비롯한 전북경찰은 곡성 방면으로 퇴각했다.
7월 20일 전주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7월 21일 남원에 집결한 전북도경과 전북 북부지역 경찰은 임실 방면에서 남하하는 북한군에 대비하기 위해 육군부대와 합동 방어태세를 갖추고, 남원시 운봉면에 진출한 함양경찰 병력과 합세하여 육십령 고개에 차단진지를 구축했다. 육십령의 전북·경남부대의 저지선은 1개 연대규모의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무너져 일부는 안의로 후퇴하고, 일부는 산복에서 저항을 계속했다. 7월 30일 진주가 포위되어 경찰 1,000여 명과 군병력 1,000여 명은 7월 31일 의령으로 철수했다. 합천으로 집결한 충남·서울·전북의 경찰병력은 일부는 고령으로, 일부는 창녕으로 낙동강 동안으로 이동했으며, 의령의 경남·전남병력은 함안-마산으로 철수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일역을 맡게 되었다. 고령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방어작전에 임하고 있던 부안경찰은 8월 4일 함안으로 후퇴하여 낙동강 방어작전에 임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부안경찰은 9월 17일 함안을 출발, 9월 25일 곡성을 지날 무렵 잔적의 공격을 받고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근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ㄴ-03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