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병규(李竝奎)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1203965
  • 전몰일자 : 19520101

공훈사항

이병규 일등중사는 충청남도 대전시 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에 수립되었으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8년 12월 중순,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제9연대가 1948년 12월 중순에 제주4·3사건 진압작전 후 대전으로 오고 제2연대가 제주도로 투입될 때, 그는 제9연대로 전속되었다. 제9연대는 서울 용산을 거쳐 1949년 6월 19일에 경기도 포천으로 이동하여 38도선 방어 임무를 담당했다.
북한군이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기습공격을 했을 때, 제9연대는 신속히 천주산(434고지)-가랑산(350고지) 간의 방어진지를 점령했으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공격에 무너지고 태릉으로 철수하여 불암산 동남쪽 210고지를 점령했다가, 6월 28일 아침에 용마산-광나루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5일 평택에서 재편성할 때 제9연대는 해체되고, 장병들은 수도사단 제1연대에 통합되었다. 이병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1연대는 진천으로 이동하여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하고, 낙동강방어선의 기계-안강 지역에서 8월과 9월에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후방지역작전을 위해 제11사단을 창설하기로 했다. 이에 9월 25일부로 대구에서 사단 본부를 편성하고, 제9·제13·제20연대를 예하 부대로 편성했다. 이병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제9연대는 10월 4일부터 지리산 동남쪽을 작전지역으로 하여 대대적인 공비소탕작전을 하여 공비들이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을 소멸시켰다.
제11사단은 공비토벌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속초-간성 일대에서 방어임무를 수행했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5월 22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6월 중순에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까지 진출했다.
이후 이병규 일등중사가 소속된 사단은 상급부대 작전지침에 의거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8월 17일부터 방어진지 전방의 884고지를 공격하여 8월 24일에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1952년 1월 1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병규 일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73-ㅇ-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